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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무리 - 완화 의료

완화 의료와 일반 치료, 병행 가능한가요?

by 우주고래하루 2025. 7. 2.

말기 환자나 중증 만성 질환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종종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됩니다.
“이제 치료를 그만두고 완화 의료로 전환해야 하나요?”
이는 일반 치료와 완화 의료를 완전히 분리된 선택지로 보는 전형적인 이분법적 사고에서 비롯된 고민입니다. 하지만 현대 의학의 흐름은 이보다 훨씬 유연하고 다층적입니다.

 

완화 의료는 단순히 ‘치료가 끝난 뒤에 받는 돌봄’이 아닙니다. 질병의 진행과 상관없이,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치료의 일부입니다. 즉, 완화 의료는 일반 치료와 병행이 가능하며, 오히려 함께할 때 더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완화 의료와 일반 치료의 차이점, 병행의 실제 가능성, 국내외 운영 현황, 환자 및 가족이 병행 시 고려해야 할 점들을 함께 살펴보며, ‘선택’이 아닌 ‘통합’의 관점에서 완화 의료를 이해해 보겠습니다.

완화 의료와 일반 치료의 병행

완화 의료와 일반 치료: 목적과 접근 방식의 차이

일반 치료(치료적 의료, curative care)는 말 그대로 질병을 치료하고 생존 기간을 연장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항암제, 수술, 방사선 치료, 면역치료 등 적극적인 의료 개입이 포함됩니다.

 

반면, 완화 의료(palliative care)는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통증 조절, 증상 완화, 정서적 지원, 가족 돌봄, 사전의료계획 수립 등 환자의 일상과 존엄을 유지하는 데 집중합니다.

하지만 이 둘은 상호배타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환자들이 항암 치료나 질병 치료를 받는 동시에, 통증 관리나 심리 상담, 영양 조절 등 완화적 개입을 함께 받습니다.

 

예를 들어, 암 환자가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구토, 식욕부진, 불안 증상에 대해 완화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특히 미국·유럽 등에서는 ‘동반 완화 의료(Concurrent Palliative Care)’가 하나의 표준이 되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완화 의료를 “질병의 치료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중증 질환 환자에게 적용 가능한 치료 접근법”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병의 상태가 호전될 수 있는 경우에도 완화 의료는 함께 적용될 수 있는 치료입니다.

 

국내 현실에서의 완화 의료 병행: 가능성과 한계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완화 의료에 대한 인식과 제도적 기반이 크게 변화했습니다.
특히 2018년 시행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은 완화 의료와 연명의료결정 제도를 제도권 안에 포함시켰고, 그에 따라 병원에서도 보다 체계적인 완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일반 치료와 완화 의료를 병행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제한적입니다. 대부분의 의료기관에서 완화 의료가 ‘항암 치료 종료 이후’에 제공되는 경우가 많으며, 아직도 ‘완화 의료 = 치료 포기’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또한 건강보험 수가 체계 상, 일부 완화 의료 서비스는 일반 치료와 동시에 청구가 어렵거나 인정받기 힘든 구조로 되어 있어 병행이 실질적으로 제한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부 암 전문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는 진료 초기부터 완화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영양팀, 사회복지팀이 함께 협진하는 통합 암 치료 모델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반 치료와 완화 의료의 병행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2024년부터 ‘재택형 호스피스’와 ‘외래형 완화 의료’의 확대 시범사업을 통해 병원 외에서의 병행 치료 기반을 구축 중입니다. 이런 흐름은 향후 환자 선택권과 치료 만족도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완화 의료 병행의 장점: 환자 중심의 통합 돌봄

 

일반 치료와 완화 의료를 병행하면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습니다.

  1. 삶의 질 유지: 항암제나 면역치료를 받는 과정에서도 통증, 피로, 식욕부진 등 부작용을 적극적으로 완화함으로써 치료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2. 치료 중단의 타이밍 판단: 환자와 가족이 완화 의료팀과 함께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치료 효과와 삶의 질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치료 중단 시점을 보다 적절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
  3. 불필요한 연명치료 감소: 환자의 의사를 사전에 파악하고 가족과 소통을 원활히 하면서, 막바지 불필요한 의료 개입을 줄일 수 있습니다.
  4. 가족 돌봄 강화: 병행 치료 과정에서 가족 교육, 심리 상담, 간병 지침 제공 등을 통해 가족의 부담과 정서적 소진을 예방합니다.

특히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의 연구에서는, 일반 치료와 완화 의료를 병행한 암 환자군이 치료 중단 결정의 타이밍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결정했으며, 응급실 이용률과 중환자실 입원률이 감소했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환자의 존엄성과 의료 자원의 효율성 모두를 높이는 결과를 의미합니다.

 

환자와 보호자가 알아야 할 점: 병행 치료를 위한 준비

 

완화 의료와 일반 치료를 병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전 준비와 의사소통이 필요합니다.

  • 주치의와의 협의: 주치의에게 완화 의료 병행 가능성에 대해 명확히 질문하고, 필요 시 완화의학 전문의와의 협진을 요청해야 합니다.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병의 경과 중 언제 치료를 중단하고 돌봄에 집중할 것인지에 대해 환자 본인의 의사를 문서화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 건강보험 적용 범위 확인: 일부 완화 의료 서비스는 요양병원, 호스피스 병동, 재택형 방문 간호 등의 방식에 따라 적용 여부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 가족 간 소통: 병행 치료는 환자뿐 아니라 가족들의 가치관과 부담을 고려해야 하므로, 모든 가족 구성원 간의 의견 공유와 조율이 필요합니다.

완화 의료는 ‘대신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선택할 수 있는 치료의 한 축입니다. 보호자와 환자가 함께 치료의 방향성과 목표를 재정립해 나가려면, 병행 치료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제도적 뒷받침이 꼭 필요합니다.


결론: 완화 의료와 일반 치료, 함께 갈 수 있는 길

‘완화 의료는 치료가 끝난 뒤 받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완화 의료는 병을 낫게 하는 것뿐 아니라 삶을 돌보고 지키는 치료입니다. 일반 치료와 병행될 때 그 효과는 배가되며, 환자의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서적·사회적 고통까지도 함께 다룰 수 있습니다.

현대 의학의 목표는 단순히 생존 연장에 그치지 않습니다. 삶의 질, 인간 존엄, 가족과의 관계, 의미 있는 이별까지도 모두 치료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완화 의료와 일반 치료의 병행은 바로 그런 환자 중심 치료의 길이며, 의료의 미래를 향한 통합적 비전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