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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무리 - 완화 의료

완화 의료에도 ‘치료 효과’가 있을까요?

by 우주고래하루 2025. 7. 1.

‘완화 의료’라는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치료가 안 되는 상황에서 받는 돌봄”으로 인식합니다. 흔히 ‘치료 중단’과 같은 의미로 여겨지기도 하며, 그래서 완화 의료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나 저항감을 갖는 환자와 보호자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인식은 완화 의료의 본질을 오해한 결과입니다.

 

완화 의료는 단지 ‘치료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치료를 시작하는 일입니다. 고통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도 분명한 ‘치료 효과’이며, 심지어 일부 환자에게는 생존 기간을 연장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완화 의료가 실제로 어떠한 치료 효과를 갖는지, 이를 통해 환자와 가족에게 어떤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는지 구체적인 사례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완화 의료는 결코 포기하는 의료가 아니라, 환자의 삶에 집중하는 적극적 치료 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완화 의료의 치료 효과 여부

완화 의료의 치료 효과: 신체적 고통 경감

완화 의료의 가장 첫 번째 목표는 통증과 증상 완화입니다. 암, 심부전, 만성 폐질환, 신경계 퇴행성 질환 등 말기 질환을 앓는 환자들은 극심한 신체적 고통에 시달립니다. 통증뿐 아니라 호흡곤란, 구토, 불면, 식욕부진, 배뇨 문제, 만성 피로 등 다양한 증상이 동반되며, 이는 단순히 삶의 질 저하를 넘어서 존엄성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완화 의료에서는 이러한 증상을 적극적으로 관리합니다.

 

예를 들어, 통증이 있는 환자에게는 마약성 진통제(예: 모르핀, 펜타닐)를 적절히 조절하여 투여하며, 호흡곤란이 심한 경우에는 산소 요법이나 저용량 진정제의 병행이 이뤄집니다. 구토에는 항구토제, 불면에는 수면 유도제나 수면 환경 개선이 포함됩니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주관적인 고통 평가를 기준으로 하여 개별 맞춤형 치료를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완화 의료 병동에 입원한 말기 암 환자 중 80% 이상이 통증 점수 4점 이상에서 2점 이하로 감소한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이는 단순한 증상 관리 수준이 아니라, 환자의 일상과 감정 상태에 큰 변화를 주는 의학적 치료 효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완화 의료의 정서적·심리적 치료 효과

 

말기 질환을 진단받은 환자들은 우울, 불안, 분노, 상실감, 죽음에 대한 공포 등 복합적인 심리 상태에 놓입니다. 이 같은 정서적 고통은 종종 신체적 고통보다 더 깊고, 해결이 어렵습니다.

 

완화 의료는 환자의 정신적 고통을 진단하고, 이를 치료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다룹니다.

심리 상담, 음악 치료, 미술 치료, 종교·영적 돌봄, 정서적 지지 등이 모두 치료의 일환으로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종교적 신념이 있는 환자에게는 영적 돌봄 담당자(Chaplain)의 정기적인 상담이 큰 위안이 되며, 자아 정체성을 회복하거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심리적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하버드대 의과대학의 연구에서는, 정기적인 정신적 지원을 받은 완화 의료 환자군이 그렇지 않은 군보다 우울증 진단율이 30% 이상 낮고, 자살 사고의 빈도도 현저히 낮다는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또한 보호자 역시, 환자와 함께 정서적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애도 준비와 심리적 안정에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완화 의료는 신체적 증상뿐 아니라 정신 건강까지 포괄하는 총체적 치료 체계로 기능합니다.

 

완화 의료의 사회적 치료 효과: 가족과의 관계 회복

 

완화 의료는 환자 개인의 고통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관계 회복과 정서적 돌봄에도 중점을 둡니다. 말기 질환은 환자뿐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를 안깁니다. 가족 내 갈등, 간병 스트레스, 감정의 소진, 경제적 부담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완화 의료는 환자-가족-의료진 간의 치유적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하며, 가족 관계의 재정립을 돕습니다.

 

예를 들어, 완화 의료팀은 가족 간의 의견 충돌을 중재하거나, 치료 결정 과정에서 가족의 죄책감과 갈등을 덜어주는 상담을 진행합니다. 환자가 생전에 전하고 싶은 말, 가족과 남기고 싶은 추억을 함께 정리하며, 이별을 준비하는 ‘애도 예행연습’(anticipatory grief)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는 사별 이후 가족의 슬픔과 트라우마를 완화하는 데에도 실질적인 치료 효과를 보입니다.

 

실제로 많은 완화 의료 기관에서는 ‘가족 중심의 간병 교육’, ‘유가족을 위한 상담’, ‘사별 후 애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부가 서비스가 아닌 치료 과정의 일환으로 간주됩니다. 완화 의료는 환자만이 아닌, 삶을 공유해 온 모든 사람들을 위한 치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생존기간 연장? 완화 의료의 과학적 효과

 

놀랍게도, 완화 의료가 환자의 생존 기간을 늘리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미국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의 2010년 연구에서는, 말기 폐암 환자 중 초기부터 완화 의료를 병행한 환자군이 평균

생존 기간이 2.7개월 더 길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환자들은 생존 기간뿐 아니라 삶의 질, 우울 증상, 의료 이용 만족도에서도 훨씬 더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완화 의료가 단순히 증상만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신체적·정신적 상태를 안정시켜 생물학적 회복력을 높이는 간접적 치료 효과를 준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특히 불필요한 고강도 치료나 응급실 이용이 줄어들면서, 환자의 몸은 오히려 더 ‘치유 가능한 상태’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의료비 부담 측면에서도 완화 의료는 중환자실 치료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높으며, 과도한 치료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는 데 기여합니다. 결과적으로 완화 의료는 환자의 생명과 존엄, 삶의 질을 모두 아우르는 과학적 의료 시스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 완화 의료는 삶을 치료하는 의료입니다

‘치료’라는 단어가 반드시 병을 낫게 하거나 생명을 연장하는 데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통을 덜고, 의미 있는 하루를 살게 하고,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설계하게 도와주는 것도 분명한 치료입니다. 완화 의료는 신체, 마음, 관계, 영혼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총체적 치료입니다.

만약 완화 의료가 없었다면, 많은 환자들이 불필요한 고통 속에 생을 마감하고, 가족들 또한 치유되지 못한 상처 속에 살아가야 했을 것입니다. 완화 의료는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치료입니다. 환자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이 치료의 의미를, 우리는 더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