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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무리 - 완화 의료

완화 의료는 수명을 단축시키는 건가요?

by 우주고래하루 2025. 6. 30.

“완화 의료를 받으면 빨리 죽는다는 거 아니에요?”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완화 의료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질문입니다. 생명을 살리기보다는 포기하는 돌봄, 혹은 죽음을 앞당기는 방식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는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는 오랫동안 ‘치료 중심’의 의료 문화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완화 의료의 목적과 방식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완화 의료는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키기 위한 의료가 아닙니다. 오히려 치료 과정에서 겪는 고통을 줄이고,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며, 스스로의 선택에 기반한 돌봄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이루어진 다수의 연구에 따르면 완화 의료를 조기에 시작한 환자일수록 더 오래 살았다는 결과도 적지 않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완화 의료가 왜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환자의 삶을 더 존엄하게 완성시켜주는 도구가 될 수 있는지 과학적 근거와 사례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완회 의료가 수명을 단축시키는 걸까요?

완화 의료의 목적은 수명 단축이 아닌 삶의 질 향상

완화 의료는 근본적으로 환자의 삶의 질(Quality of Life, QoL)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둡니다. 생명을 연장하거나 단축하는 데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어떤 병적 상황 속에서도 환자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집중합니다.

예를 들어, 말기 암 환자가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완화 의료로 전환했을 때, 의료진은 통증, 메스꺼움, 호흡 곤란, 불안감 등의 증상을 조절하기 위한 치료에 집중합니다. 이는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의 방향을 ‘생명 유지’에서 ‘삶의 질 유지’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삶의 질 유지’가 곧 ‘삶의 단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과도한 연명 치료나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가 환자의 수명을 더 줄일 수 있다는 연구도 존재합니다. 완화 의료는 의료적 과잉과 고통의 악순환을 끊고, 환자의 몸과 마음이 스스로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완화 의료와 수명에 대한 연구: “오히려 수명이 길어질 수 있다”

 

완화 의료가 생명을 단축시킨다는 편견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반박되어 왔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2010년 미국 하버드 의대에서 발표된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의 연구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보여줍니다.

말기 폐암 환자 151명을 대상으로 표준 암 치료만 받은 그룹과, 동일한 치료에 조기 완화 의료를 병행한 그룹을 비교했을 때:

  • 완화 의료 병행 그룹의 평균 생존 기간이 더 길었다 (11.6개월 vs 8.9개월)
  • 삶의 질도 더 높았고, 우울감이 낮았으며, 불필요한 입원 횟수도 적었다

이는 단순히 ‘기분이 좋아지니까 오래 산다’는 개념이 아니라, 고통을 줄이는 것이 몸의 회복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뿐만 아니라, 통증이나 메스꺼움, 숨 가쁨 같은 신체적 고통이 줄어들면, 환자는 식사를 더 잘할 수 있고, 잠도 더 깊이 잘 수 있으며, 움직임도 늘어나 전반적인 신체 기능이 좋아집니다. 이처럼 완화 의료는 간접적으로 환자의 생존 기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개입입니다.

 

완화 의료가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오해가 생긴 이유

 

그렇다면 왜 완화 의료에 대해 ‘수명을 줄인다’는 오해가 생겼을까요?

 

첫째, 완화 의료가 도입되는 시점 자체가 ‘임종이 가까운 때’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환자나 가족은 치료를 다한 후 더 이상 방법이 없을 때 완화 의료를 고려합니다. 그래서 완화 의료를 시작하자마자 환자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주변에서 보게 되면, 완화 의료가 죽음을 앞당긴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습니다.

 

둘째, 연명 치료 중단과 완화 의료를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연명 치료 중단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생명 유지 장치를 제거하는 결정일 수 있고, 이는 법적·윤리적으로도 복잡한 절차입니다. 반면 완화 의료는 그러한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도 환자의 고통을 줄이는 ‘치료’입니다. 환자가 호흡기나 인공영양을 거부하고자 할 때, 그 뜻을 존중하면서도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불안, 호흡 곤란 등을 조절해주는 것이 바로 완화 의료입니다.

 

셋째, 완화 의료에 대한 제도적 홍보와 교육이 부족했던 것도 하나의 원인입니다. 많은 의료인조차 완화 의료를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쓰는 치료’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었고, 이는 대중에게도 부정적인 인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최근에는 의과대학, 간호대학에서도 완화 의료 교육이 확대되고 있으며, 국가 차원에서도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완화 의료는 ‘삶의 마지막’을 책임지는 긍정적 선택

 

완화 의료는 단순히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방식입니다. 이 말은 곧, 완화 의료가 환자의 인간성을 지키고, 환자가 마지막까지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적극적인 돌봄이라는 뜻입니다.

환자는 완화 의료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방식으로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 신체적 고통은 물론, 정서적·사회적·영적 고통까지 함께 돌봅니다.
  • 가족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삶의 의미를 되짚으며, 이별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 쓸모없는 의료 개입 없이, 오히려 자기답게 사는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환자들은 완화 의료를 받고 나서 “죽음을 준비한다기보다, 삶을 회복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위로나 미화가 아니라, 고통이 줄어들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실제로 삶의 밀도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환자와 가족이 알아야 할 현실적 선택

 

만약 가족 중 누군가가 말기 질환을 앓고 있다면, 완화 의료는 반드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선택지입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 지금 치료가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있는가, 아니면 고통을 늘리고 있는가?
  • 환자는 진짜로 이 치료를 원하고 있는가?
  • 우리는 환자의 ‘수명’만 보고 있는가, 아니면 ‘삶’ 전체를 바라보고 있는가?

완화 의료는 삶의 마지막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그 안에는 후회, 용서, 화해, 감사, 사랑 같은 인간적인 감정들이 다시 피어납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때로는 어떤 약물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결론: 완화 의료는 삶의 질을 지키는 길입니다

완화 의료는 결코 수명을 단축시키는 돌봄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이상 살릴 수 없는’ 사람에게 시도하는 마지막 치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살고 있는’ 사람을 위한 삶의 치료입니다.

고통을 줄이는 것은 생명을 단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완화 의료는 환자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그리고 고요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완화 의료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나, 그 본질적인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