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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무리 - 완화 의료

완화 의료 대상은 반드시 암 환자여야 하나요?

by 우주고래하루 2025. 7. 4.

완화 의료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암 환자’를 떠올립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완화 의료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대부분 말기 암환자 치료와 관련된 분야였습니다. 호스피스 병동도 주로 암 환자를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으며, 건강보험 혜택 역시 암 환자를 우선 적용 대상으로 해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완화 의료의 개념은 점점 확장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완치를 기대할 수 없고, 삶의 질 향상이 중요한 상태’에 놓인 모든 말기 환자들이 완화 의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국내외에서 점차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정말 완화 의료는 ‘암 환자만의 권리’여야 할까요?

 

이 글에서는 완화 의료 대상의 범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암 이외의 질환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되는지, 제도적인 한계는 무엇이며 향후 어떤 방향이 필요한지를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완화 의료 대상 환자

 

완화 의료의 본질: 질병보다 ‘고통’에 주목하는 접근

 

완화 의료의 핵심은 단순히 특정 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가 어려운 상태에서 겪는 신체적·심리적·사회적 고통을 줄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완화 의료를 “치료가 어려운 질병을 가진 환자와 가족에게 고통을 완화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접근”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여기서 질병은 암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실 말기 상태로 진행되는 질환은 암 외에도 무척 많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심부전,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숨이 가쁘고 반복적인 입원, 산소 치료가 필요한 상태
  • 만성 간경화: 복수, 황달, 출혈 경향 등으로 고통받는 환자
  • 만성 신부전: 투석이 어려운 상황에서 삶의 질이 크게 저하된 상태
  • 루게릭병(ALS), 치매 말기: 근육 위축, 인지 기능 저하, 삼킴 장애 등
  •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 면역력 저하로 인한 반복 감염 및 악성 종양 동반

이처럼 다양한 질병들이 ‘완화 의료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아직까지도 의료 현장과 사회에서는 “완화 의료 = 암 환자”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는 제도적 기반과 홍보 방향, 그리고 과거 의료 서비스의 운영 방식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국내 제도에서의 대상 범위: 여전히 암 중심적 구조

 

우리나라에서 완화 의료가 공식적으로 도입된 시점은 2003년 보건복지부 시범사업이 시작되었을 때입니다. 이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2018년에 시행되며 완화 의료는 법적으로 보호받는 제도로 자리잡았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의 초기 설계 자체가 ‘암 말기 환자’를 중심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실질적인 대상자 대부분이 암 환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 건강보험 적용 대상: 호스피스 입원형 병동은 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만성 간질환,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COPD) 환자에게만 건강보험이 적용됩니다.
  • 완화 의료 전문기관 운영: 대부분의 전문기관은 암 환자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외 질환은 환자 수가 적어 전문 인력을 배치하거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 의료진의 인식: 말기 암 외 환자에 대해서는 완화 의료를 적극 권유하지 않거나, 환자 상태를 연명의료 결정 대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제도적 기반의 문제이자, 사회 인식의 문제이며, 결국 비암성 말기 환자들이 완화 의료에서 제외되는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비암성 질환 환자도 완화 의료가 꼭 필요한 이유

 

비암성 말기 환자들도 신체적 고통, 감정적 불안, 가족 간 갈등, 삶의 의미 상실 등의 문제를 겪습니다. 특히 치매 말기 환자나 루게릭병 환자는 의사소통이 어려워지면서 감정 표현이 제한되고, 이로 인한 고립감과 무력감이 더욱 심화됩니다.

이러한 환자에게도 완화 의료는 필수적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 말기 심부전 환자: 지속적인 호흡곤란, 수면 장애, 반복적인 입원으로 인해 환자와 가족 모두 지치고 우울해집니다. 완화 의료를 통해 통증 조절, 정서 상담, 자택 중심의 돌봄 계획이 병행된다면 환자의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될 수 있습니다.
  • 루게릭병 환자: 서서히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서 극심한 두려움과 불안, 생명유지장치에 대한 결정 부담이 생깁니다. 이때 전문 심리상담, 호흡 재활, 가족 교육 등을 포함한 완화 의료가 필요합니다.
  • 치매 말기 환자: 식사, 배변,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에서 보호자 돌봄 부담이 매우 큽니다. 호스피스 서비스나 지역사회 중심의 완화 의료 접근이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암 외에도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완화 의료는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이며, 이들이 배제되는 구조는 분명한 개선이 필요합니다.

 

앞으로의 과제: 포괄적 완화 의료 제도로의 전환

 

국내 완화 의료 제도는 점점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암 환자 중심’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도와 인식 모두에서 포괄적 전환이 필요합니다.

  • 건강보험 적용 대상 확대: 비암성 말기 질환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지역 병원에서도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 전문 인력 양성: 간호사, 사회복지사, 상담사 등 비암성 환자의 특성을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을 훈련하고 배치해야 합니다.
  • 가정형·재택형 호스피스 활성화: 암 외 질환 환자는 병원보다 자택에 머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재택 중심의 완화 의료 서비스가 더욱 필요합니다.
  • 국민 인식 개선: 완화 의료가 암 환자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널리 알리고, 다양한 질환에서의 적용 사례를 소개하는 교육과 캠페인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환자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가 어떤 질병을 앓고 있든, 그가 느끼는 고통이 크고, 삶의 마지막을 평온하게 맞이하고자 한다면, 완화 의료는 그 누구에게도 차별 없이 제공되어야 할 권리입니다.


결론: 완화 의료는 질병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완화 의료는 ‘죽음을 앞둔 암 환자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마지막을 존엄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며, 병의 이름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기준으로 적용되어야 할 돌봄입니다.

 

앞으로 완화 의료가 모든 말기 환자에게 열려 있는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개선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고통의 크기를 차별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완화 의료의 본질이 모든 환자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