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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무리 - 완화 의료

완화 의료 중에도 수술을 받을 수 있나요?

by 우주고래하루 2025. 7. 5.

‘완화 의료’는 말기 환자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의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완화 의료에 들어가면 적극적인 치료, 특히 ‘수술’은 더 이상 받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수술은 치료 목적의 가장 공격적인 개입 중 하나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이제 수술은 불가능합니다”, “의미 없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환자와 보호자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단선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수술은 ‘생명 연장을 위한 치료’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완화 의료의 핵심 목표가 환자의 고통 경감과 일상 유지에 있다면,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이 수술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완화 의료 중에도 수술은 특정 조건과 목적에 따라 충분히 시행 가능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완화 의료에서 수술이 허용되는 조건과 실제 적용 사례, 고려해야 할 윤리적·의학적 판단 요소 등을 상세히 살펴보며, 수술이라는 선택이 반드시 ‘치료 중심’이어야만 한다는 오해를 바로잡아 보겠습니다.

완화 의료 중 수술

완화 의료에서의 수술, 목적이 다르다

전통적으로 수술은 종양을 제거하거나, 병의 진행을 막기 위한 ‘근치적 치료’의 도구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완화 의료에서의 수술은 치료 목적이 아니라, ‘고통을 덜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됩니다. 이 차이는 완화 의료에서 수술을 받아들이는 핵심적인 관점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종양이 장을 막아 음식 섭취가 불가능한 상태에서의 우회로 조성 수술
  • 요관이 종양으로 막혀 배뇨가 불가능한 경우에 시행하는 스텐트 삽입 수술
  • 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전이된 뼈 병변에 대해 골절 예방을 위한 고정술

이처럼 수술은 종양 자체를 없애는 목적이 아니라, 환자가 남은 삶을 보다 덜 고통스럽게, 보다 인간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이 됩니다. 이를 '완화적 수술(palliative surgery)'이라 하며, 국내외 가이드라인에서도 완화 의료의 일환으로 충분히 권장되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완화의료협회(CAPC)는 완화 수술을 적극적인 증상 관리 수단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항암 치료와 마찬가지로 통합적인 돌봄 계획 안에서 병행 가능한 방법으로 제시합니다.

 

실제 임상 적용 사례들

 

완화 의료 중 수술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임상 사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 사례 1: 위암 말기 환자의 위 우회술
    A씨는 위암이 진행되어 음식물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출구 폐색이 생겼습니다. 체중이 급격히 줄고 탈수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의료진은 위장관 우회로를 만드는 수술을 제안했습니다. 수술 후 A씨는 다시 미음과 죽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남은 2개월을 가족과 함께 식사하며 보낼 수 있었습니다.
  • 사례 2: 자궁경부암 전이로 인한 요관 폐색 환자
    B씨는 말기 자궁경부암으로 양측 요관이 막히면서 심한 통증과 신장 기능 저하가 동반되었습니다. 스텐트를 삽입하는 수술로 통증이 완화되었고, 투석 없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사례 3: 뼈 전이로 인한 골절 위험에 처한 폐암 환자
    C씨는 대퇴골에 전이된 종양으로 인해 골절 위험이 높아져 걷지 못하게 되었고, 침대에만 누워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예방적 골 고정 수술을 통해 다시 휠체어를 타고 외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수술들은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환자가 마지막까지 스스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준 조치였습니다. 완화 의료의 핵심은 치료의 ‘종료’가 아니라, 고통 없는 삶의 ‘지속’이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사례들입니다.

 

수술 여부 판단 시 고려할 요소들

 

완화 의료 상황에서 수술을 결정할 때는 단순히 의학적 가능성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다층적인 요소들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 환자의 전신 상태: 심장, 폐, 신장 등 주요 장기 기능이 수술을 감당할 수 있을지 평가해야 합니다.
  • 삶의 질 개선 기대치: 수술 후 환자의 증상 경감이나 기능 회복 가능성이 충분한지 예측해야 합니다.
  • 예상되는 회복 기간: 회복에 몇 주 이상 소요될 경우, 환자의 여명과 비교해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 환자의 의사: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바람입니다. 환자가 조금이라도 더 기능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지, 아니면 안정된 상태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를 신중히 들어야 합니다.
  • 가족과 의료진 간의 소통: 수술을 하기로 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오해와 기대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가족과 의료진 간의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수술은 환자에게 다시 희망을 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무리한 시도로 고통만 늘릴 수 있는 위험성도 있습니다. 완화 수술은 반드시 환자 중심의 판단 기준에 따라 이뤄져야 하며, ‘할 수 있는 수술’보다 ‘해야 할 수술’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의료 시스템과 사회적 제도, 남은 과제들

 

완화 수술이 임상적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선택지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접근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제도적·구조적 한계와도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 수술에 대한 의료기관 간 기준 차이: 일부 병원은 완화 의료 환자에 대해 수술을 꺼리거나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중소병원이나 지방 병원에서는 인력 및 장비 부족, 경험 미비 등의 이유로 환자의 선택지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 건강보험 적용의 제한: 완화 목적 수술에 대해 명확한 건강보험 기준이 없어, 의료기관이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실질적인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 구조입니다.
  • 의료진의 인식 부족: 일부 의사는 완화 의료에 대해 ‘더 이상 치료하지 않는 단계’로 오해하고 있어, 수술을 고려 대상에서 아예 배제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완화 의료에 대한 인식 제고, 의료진 교육 강화, 완화 수술에 대한 보험 체계 정비 등이 필요합니다. 특히 환자와 가족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의사소통 환경 조성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결론: 수술은 치료가 아닌 ‘돌봄’의 연장선이 될 수 있다

완화 의료 중 수술은 더 이상 생명을 구하기 위한 싸움의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고통을 줄이고, 환자가 인간답게 남은 시간을 살 수 있도록 돕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적절하게 시행된 수술은 환자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고,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할 여유를 만들어줍니다.

 

완화 수술을 거부할 필요도, 무조건 기대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가치와 바람, 삶의 질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태도입니다. 의료진과 가족이 함께 고민하고 결정할 때, 수술은 더 이상 생과 사의 경계가 아니라, 삶의 존엄을 지켜주는 다리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