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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무리 - 완화 의료

완화 의료의 말기 단계에 환자가 가장 많이 말하는 한 마디

by 우주고래하루 2025. 6. 25.

말기 치료의 현장은 단순한 의료의 공간이 아닙니다. 생의 끝자락에 선 사람들이 자신과 세상을 정리하고, 남은 이들과 감정을 나누는 인생의 결정적인 무대입니다. 환자들이 이 시기에 하는 한마디 한마디는 겉으로는 짧고 평범할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삶의 총결산과 같은 감정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는 아픔을 이겨내며 감사의 말을 전하고, 또 누군가는 사랑과 용서를 고백하며 눈물짓습니다. 이 글에서는 말기 치료 중 환자들이 가장 많이 남기는 말들을 중심으로 그 말에 담긴 의미와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고 이해해야 하는지를 다각도로 조명하고자 합니다.

 

완화 치료 중 말기에 환자의 말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 끝없는 고통에 지친 이들의 소리 없는 외침

말기 환자들이 가장 자주 반복하는 말 중 하나는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입니다. 이 말은 단지 치료 중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친 신체적 고통, 정신적 소진, 정서적 외로움, 존재에 대한 회의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한 마디입니다. 특히 항암 치료나 장기간의 입원 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끊임없는 검사, 약물 부작용, 신체 기능 저하 등으로 인해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게 됩니다.

이때 보호자나 의료진은 종종 "조금만 더 힘내 보자", "곧 나아질 거야"라고 말하며 환자를 다독이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은 환자의 진심을 흘려보내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환자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묻는 감정, 자신의 의사를 존중해 달라는 요구를 그 말 한마디에 담고 있습니다. 진정한 돌봄은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는지 느껴져요"라고 공감해주고, 의료진과 함께 치료 방향을 환자의 의지에 맞게 재조율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특히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은 환자의 경우, 이와 같은 발언이 향후 치료 방향 결정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환자가 말하는 '그만'은 단지 치료의 중단이 아니라, 새로운 돌봄의 시작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죄송해요. 민폐만 끼쳐서" - 사랑하는 이들에게 짐이 된다는 자책감

삶의 마지막에 다다른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가족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자책감에 시달립니다. 특히 자립적인 삶을 살아오던 사람들이 병으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고, 식사조차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 그 무력감은 더욱 커집니다. "간병하느라 고생만 시켜서 미안해요", "내가 괜히 오래 살아서 너희들 힘들게 하는 것 같아"와 같은 말들은 환자가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럴 때 많은 보호자들은 본능적으로 "아니에요, 그런 말 마세요"라고 반응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오히려 환자의 감정을 부정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보다 바람직한 대응은 환자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그 존재가 가족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진심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당신이 있어서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함께 있어줘서 우리가 더 큰 위로를 받았어요"처럼 구체적이고 따뜻한 표현은 환자에게 다시금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확신을 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죄책감은 단순히 정서적 문제를 넘어서, 식사 거부나 치료 거부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감정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심리상담이나 영적 돌봄으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맙습니다" - 말기 환자들의 조용한 감사와 존엄성의 회복

"고맙습니다"는 말기 환자들이 놀라울 정도로 자주 하는 말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도, 그들은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약을 건네는 손길, 함께 있어주는 존재 자체에 대해 감사함을 표현합니다. 이 감사의 말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관계성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특히 병원이나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의사, 간호사, 봉사자, 간병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손을 거쳐 하루를 보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환자들은 자신이 여전히 '돌봄의 대상'이자 '존재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마지막까지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고마워요" 같은 말은, 환자가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의료진이나 보호자는 이러한 감사의 표현을 그저 의례적인 말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진심으로 반응하고 환자의 감정을 함께 나누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예컨대 "저희도 선생님께 감사해요. 함께한 시간이 저희에게도 소중했어요"라고 응답한다면, 그 말은 마지막까지 인간 대 인간으로 연결되는 고리로 작용하게 됩니다.

 

"무서워요" - 실존적 두려움과 죽음의 그림자

말기 환자가 때때로 조용히 건네는 말, "무서워요"는 짧지만 무게가 큰 말입니다. 이 말에는 단지 죽음 자체에 대한 공포뿐 아니라, 삶의 종료, 정체성의 소멸, 관계의 단절,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죽음 이후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감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특히 종교적 신념이 없거나 죽음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환자일수록 이 감정은 더욱 깊고 복잡해집니다.

의료진이나 가족이 이 말을 들었을 때 흔히 하는 말은 "괜찮아질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입니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환자의 감정을 외면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오히려 가장 효과적인 대응은 '함께 있어주기'입니다. 침묵 속에서도 손을 잡아주고, 따뜻한 눈빛으로 환자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것이 말보다 더 깊은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 말씀이 이해돼요. 정말 무서울 수 있어요"라고 감정을 그대로 수용해주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 됩니다.

또한 이런 실존적 고통은 심리상담사나 영적 돌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보다 구조화된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 필요합니다.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말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입니다.


말기 치료 중 환자들이 남기는 말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 한마디 한마디는 살아온 삶의 기록이며, 남겨질 이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라는 포기의 말도, "고맙습니다"라는 감사의 말도, "무서워요"라는 두려움의 말도 모두 존중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돌봄은 그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그 말 뒤에 숨겨진 감정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말기 치료란 육체의 고통을 줄이는 것 이상으로, 말과 마음을 통해 존재를 인정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마지막까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여정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