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을 앞둔 말기 환자와 그 가족에게 가장 힘든 순간은 ‘치료를 어디까지 지속해야 할까?’ 하는 고민일 수 있습니다. 병원 침대 위에서 의료진이 제시하는 선택지는 다양하지만,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환자와 가족은 혼란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말기 치료’와 ‘연명 치료’라는 단어는 단순히 시행 여부의 차이가 아닙니다. 이 둘의 경계는 치료의 목적, 환자의 의사, 삶의 질, 가치관, 의료 윤리, 사회적 환경 등 수많은 요소가 중첩된, 사실상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의료진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더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말기 치료와 연명 치료의 기본 개념부터 법적·의학적 판단 기준, 실제 임상에서 마주치는 딜레마와 당시 고려해야 할 가치까지 총체적으로 다루었습니다.
말기 치료의 정의: '삶의 질'에 집중하는 마지막 돌봄
'말기 치료'란 보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회복 불가능한 말기 상태에 접어든 환자에게 시행되는 치료를 말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치료를 계속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치료의 목적이 회복이나 완치가 아니라 ‘삶의 질 유지에 집중하는 전환점’이라는 데 핵심이 있습니다. 이는 곧 ‘완화 의료(palliative care)’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심리적·사회적·영적 고통까지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치료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말기 암 환자에게 더 이상의 항암 치료는 통증과 부작용만 더할 뿐입니다. 이때 말기 치료는 통증 조절, 호흡 곤란 완화, 식욕 증진, 불안·불면 해소 등 환자의 남은 시간을 평온하고 인간답게 마무리하도록 돕는 데 집중합니다. 또 어떤 환자는 진정치료(palliative sedation)를 통해 임종까지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며, 여러 가지 증상 관리 전략이 통합되어 실제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합니다.
이처럼 말기 치료는 ‘치료의 끝’이 아니라 ‘돌봄의 시작’입니다. 더 이상 병의 근원에 접근하지 않더라도, 존엄한 죽음과 의미 있는 시간을 남길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연명 치료의 의미: 생명을 가능한 한 유지하려는 의료적 개입
'연명 치료'는 질병의 완치나 회복 가능성이 극히 낮은 시점에서, 생명유지를 위해 기계나 약물, 시술 등의 인위적인 방법을 지속하는 모든 의료적 개입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심폐소생술(CPR),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인공영양운영(비경구영양), 혈압 유지 약물 및 수액 공급 등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장치나 투여는 단기적으로는 생명을 지탱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신체적 고통 고착과 경제적·심리적 부담을 유발합니다. 예컨대, 삽관된 환자가 살아있지만 의식이 없는 상태로 계속 연명되는 경우, 환자에게도 보호자에게도 ‘의미 있는 삶’이 아니라 ‘고통의 유지’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연명 치료는 단순히 ‘살아 있음’을 위한 수단일 뿐, 삶의 질, 환자의 가치, 가족과의 관계, 이러한 깊은 의미까지 포함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데 계속 연명 치료를 시행하는 것은 사고와는 다른, 치료 윤리의 실격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경계선의 기준: 회복 가능성, 치료 목표, 환자 의향, 삶의 질
어디까지 연명 치료를 하고, 어디서 말기 치료로 전환할 것인가? 이 경계선은 몇 가지 기준에 의해 세심하게 가려져야 합니다:
- 의학적 회복 가능성: 치료가 환자를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는지, 아니면 회복 불가능한 상태인지 의료진이 판단해야 합니다.
- 치료 목적: 생명 연장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증상 완화와 삶의 질 유지에 중점을 두는지 여부입니다.
- 환자의 자기결정권: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환자가 생전에 연명치료 중단을 문서로 남겨두면 그 의사를 존중할 수 있습니다.
- 연명의료계획서: 진료 중 치료 방향을 환자·가족과 의료진이 결정해 기록합니다.
- 삶의 질 고려: 치료가 단지 생명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환자 삶의 질을 해치고 있는지 반드시 평가해야 합니다.
- 가족/보호자의 동의 및 공감: 환자의 뜻이 명확하지 않다면, 가족 간 합의가 매우 중요합니다. 가족 2인 일치 동의는 법적 기준에 부합합니다.
이러한 판단 기준은 단일 요소가 아닌 의학적, 윤리적, 법적, 감성적 요인들이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경계선은 정해진 답이 아니라, 상황마다 유기적으로 합의되어야 하는 '과정'입니다.
한국의 연명의료결정법: 결정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다
2018년 2월부터 시행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은 이 경계선에서의 어려운 결정들을 제도적으로 지원합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가능: 환자 스스로 “삶의 마지막에는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공식 문서로 남길 수 있음
-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진료중 환자·가족·의료진이 함께 치료 방향을 결정하고 기록함
- 연명의료 중단 가능 치료 범위 정의:
- 심폐소생술(CPR)
- 인공호흡기
- 혈액투석
- 항암제(치료적 효과 없는 경우)
- 체외막 산소공급 장치(ECMO) 등
- 등록 시스템(LST)을 통한 공식 기록과 정식 절차 보장
- 환자 의사 확인 불가 시 가족 동의: 환자 의사 표현이 불가할 경우, 가족 2인 이상 동의로 결정 가능
이는 단순히 치료 중단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뜻이 존중되고, 의료진과 가족 간 안전한 교감이 형성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입니다.
임상현장의 윤리적 딜레마: 선택의 무게
말기 치료냐 연명 치료냐의 결정은 실제로 매우 무거운 윤리적·감성적 과제입니다. 다음은 대표적인 고민 상황입니다:
A. 회복 가능성의 불확실성
예를 들어 폐렴으로 인공호흡기를 단 환자가 있지만, 암 말기 상태라 완전 회복은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의료진은 “일단 살려서 지켜보자”라는 연명 치료를 권할지, 아니면 “환자의 평온이 중요하다”라며 말기 치료로 전환을 권할지 갈등하게 됩니다.
B. 가족 간의 의견 차이
가족 중 일부는 의사의 제안을 따르며 연명 치료를 원하지만, 또 다른 가족은 말기를 받아들이고 싶어할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의료진은 갈등 상황에서 중립적 유도와 심리적 중재 역할을 해야 하며, 필요 시 의료윤리위원회 심의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C. 죄책감과 두려움
병원에 누운 환자에게 “연명치료를 멈추자”고 권하면, 대부분 가족은 “제가 포기하는 건 아닐까요?”라며 죄책감을 호소합니다. 이때 의료진은 환자의 뜻임을 강조하고, 가족이 스스로 평온을 찾도록 도와야 합니다.
D. 의료진의 부담
연명치료가 더는 효과가 없지만 의료진이 제동을 걸기 어려운 상황이 있습니다. 의료진도 “치료가 효과 없는 줄 알지만, 환자가 가족이 원하니까…”라는 동료나 보호자의 압박 앞에 흔들릴 수 있으며, 이때 윤리위원회 구성이나 팀 미팅이 큰 도움이 됩니다.
환자와 가족이 고려해야 할 실질적인 질문
환자와 가족은 아래와 같은 질문을 통해 치료 방향을 명확히 할 수 있습니다:
- 이 치료(연명 치료)는 어떤 상황을 목표로 하는가?
- 회복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 남은 시간 동안 삶의 질은 어떻게 유지되나?
- 이 치료로 인해 우리 가족의 삶에 어떤 변화와 부담이 생기는가?
- 환자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해 가족과 의료진이 함께 답을 찾아 나가며, 최초에는 불확실했던 정답이 조금씩 보이게 됩니다.
결정 이후의 돌봄: 전환이 아닌 ‘연속된 돌봄’의 여정
연명 치료 중단이나 말기 치료 시작은 '치료 종료'가 아닙니다. 오히려 돌봄의 ‘강도’와 ‘초점’이 전환되는 시작점입니다.
- 통증 관리, 심리상담, 영적 지원: 환자의 불편함을 덜기 위한 다양한 돌봄 프로그램 제공
- 가족 상담 및 애도 준비: 의료진과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통해 감정적 준비
- 환경 조성: 생각해둔 장소(집,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가 평온히 지낼 수 있도록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반영: 환자의 의사 표현이 가능했든, 문서로 남겼든 반드시 지켜짐
- 돌멸 후 절차 안내: 장례, 사후 조치 등도 미리 이야기하여 가족의 부담을 낮춤
이처럼 치료 형태는 바뀌지만, 돌봄의 방향과 사랑은 지속적으로 이어집니다. 오히려 환자와 가족이 마지막까지 ‘함께 있는 시간’을 소중히 하고, 스스로 정한 방향에 따라 이별을 맞이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결론: 연명과 말기의 경계는 단순히 치료의 '멈춤'이 아니라 '삶의 전환'입니다
말기 치료와 연명 치료의 경계선은 의료적 행위의 종류가 아니라, 치료의 목적, 환자·가족의 가치와 뜻, 삶의 질, 그리고 돌봄의 형태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이 경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자신이 어떤 마지막을 원했는가입니다. 가장 개인적인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연명 치료가 생명을 불확실한 방식으로 '연장'한다면, 말기 치료는 마지막까지 '존엄과 평온'을 지키며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 글이 환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과 의료진에게도 착한 결정을 위한 작은 나침반이 되길 바랍니다. 명확히 알지 못해 고민하던 시간에, 치료와 돌봄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해나가는 용기와 지혜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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