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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무리 - 완화 의료

완화 의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약물 10가지

by 우주고래하루 2025. 7. 12.

말기 환자의 고통은 단순한 통증을 넘어선 복합적인 고통입니다.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불안, 메스꺼움, 호흡 곤란, 불면, 정신적 혼란 등 다양한 증상이 겹쳐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관리하기 위한 맞춤형 약물치료가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일반적인 치료와 달리 완화 의료에서는 병을 고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을 유지하고 증상을 완화하는 것이 치료의 중심이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완화 의료 현장에서는 일반 내과나 종양학에서 사용되는 약물들과는 성격이 조금 다른, 증상 조절을 위한 약물들이 많이 사용됩니다. 이 글에서는 실제 완화 의료에서 환자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10가지 약물을 소개하며, 그 목적과 효능, 주의사항까지 함께 설명드리겠습니다.

완화 의료에서 많이 쓰이는 약물 10가지

모르핀 (Morphine) – 완화 의료의 대표 진통제

가장 널리 알려진 오피오이드계 진통제입니다. 중등도에서 중증의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가장 자주 사용되며, 말기 암 환자나 호흡 곤란이 심한 환자에게도 효과적입니다. 모르핀은 정맥 주사, 경구용, 패치 등 다양한 형태로 투여할 수 있으며, 용량 조절을 통해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많은 이들이 “모르핀은 죽기 직전에 쓰는 약”이라는 오해를 가지고 있으나, 모르핀은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고 삶의 마지막 시간을 더 평온하게 만들어줍니다.

 

옥시코돈 (Oxycodone) – 모르핀과 함께 쓰이는 강력 진통제

 

모르핀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오피오이드계 약물로, 모르핀에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부작용이 있는 환자에게 대체제로 사용됩니다. 통증 조절이 어려운 경우에는 서방형(12시간 지속) 제형으로 투여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 모르핀과 병용하기도 합니다.

옥시코돈은 내성과 의존성이 생길 수 있으므로, 용량 조절과 함께 의료진의 세심한 관찰이 필요합니다.

 

할로페리돌 (Haloperidol) – 섬망과 구토를 동시에 잡다

 

말기 환자에게 자주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는 섬망(delirium)입니다. 갑작스러운 혼란, 불안, 환각 등이 동반되는 증상으로,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에게도 큰 심리적 충격을 줍니다. 할로페리돌은 섬망, 초조, 불면, 구토 등에 효과적이며, 특히 신부전, 간부전 환자에게도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어 선호됩니다.

1일 0.5~1mg부터 시작하여 필요에 따라 증량하며, 경구 혹은 정맥주사로 투여할 수 있습니다.

 

메토클로프라미드 (Metoclopramide) – 항구토제의 대표주자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뿐 아니라, 말기 환자에게도 구토나 오심은 흔한 증상입니다. 메토클로프라미드는 위 배출을 촉진하고, 중추신경계의 구토 중추를 억제하여 구토 증상을 효과적으로 완화합니다.

특히 음식 섭취가 어려운 환자나, 위정체(gastric stasis)가 의심되는 경우 매우 유용합니다.

 

라모트리진 (Lamotrigine) – 신경병증성 통증을 위한 항경련제

 

항경련제로 개발되었지만, 신경병증성 통증(타는 듯한, 찌릿찌릿한 통증)에 효과가 있어 완화 의료에서 사용됩니다. 일반 진통제로 조절되지 않는 통증에 보조요법으로 투여하며, 신경계가 예민한 말기 환자에게 유용합니다.

다만, 발진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천천히 용량을 증량해야 합니다.

 

로라제팜 (Lorazepam) – 불안과 불면을 다스리는 항불안제

 

말기 환자는 죽음에 대한 공포, 통증, 상실감으로 인해 불안과 불면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로라제팜은 벤조디아제핀계 약물로, 단기간의 불안 완화와 수면 유도에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고령 환자에서는 과다진정, 혼동, 낙상 위험이 있으므로 용량 조절에 주의해야 하며, 장기 사용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덱사메타손 (Dexamethasone) – 만능 보조제

 

스테로이드계 약물인 덱사메타손은 통증 조절, 식욕 촉진, 오심 완화, 뇌압 감소, 염증 억제 등 다방면으로 활용됩니다. 특히 뇌전이 환자에서 두통이나 부종을 완화하고, 전신 쇠약으로 식사가 어려운 환자에게 식욕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만 고용량 장기 사용 시 면역 억제, 근육 약화, 수면장애 등의 부작용이 있으므로 필요한 기간만 단기간 사용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메페리딘 (Meperidine) – 급성 통증 완화를 위한 선택

 

급성 경련성 통증이나 담석증, 방광 경련 등에서 사용됩니다. 모르핀에 비해 사용 빈도는 낮지만, 특정 경우에 유용합니다. 신부전 환자에게는 대사산물 축적으로 인한 독성 가능성이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부프레노르핀 (Buprenorphine) – 패치형 진통제

 

부프레노르핀은 패치 형태로 피부에 부착하는 진통제로, 경구 섭취가 어려운 환자에게 유리합니다. 작용 시간도 길고, 투여 간격도 3~7일로 유지되어 간병 부담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습니다.

모르핀보다 진통 작용이 약할 수 있어 중등도 통증에서 활용되며, 장기요양시설이나 재택 돌봄에서도 선호되는 약물입니다.

 

글리코피롤레이트 (Glycopyrrolate) – 임종 직전의 가래 소리 줄이기

 

임종 직전에는 환자의 호흡이 불규칙해지면서 가래 끓는 소리(데스 래틀, death rattle)가 나타납니다. 이 소리는 환자보다는 보호자에게 큰 정서적 충격을 주는데, 글리코피롤레이트는 침과 가래의 분비를 억제해 이러한 소리를 줄여줍니다.

의식이 없거나 약을 삼킬 수 없는 경우 근육주사나 피하주사로 사용됩니다.


마무리: 고통을 줄이는 것은 ‘치료’가 아니라 ‘배려’입니다

완화 의료에서 약물은 단순한 증상 억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을 보다 인간답게 보내도록 돕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가족과 함께 평온한 시간을 보내게 하는 데 이들 약물은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약물 사용이 환자의 의사에 기반하고, 적절한 교육과 지식 아래 이뤄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완화 의료는 단순한 ‘치료 포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질을 지키기 위한 깊은 존중과 배려의 실천입니다.

앞으로 완화 의료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이해가 확산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이 그 작은 시작이 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