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호흡기, 인공심폐기, 혈액투석기, 체외막산소공급장치(ECMO)…
의학의 발달은 우리가 더 오래 ‘살 수 있게’ 만들어주었지만, 때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특히 말기 치료 과정에서 기계적 연명치료를 받는다면, 우리는 종종 ‘죽음을 연기하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실제로 생존하는 것과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은 엄연히 다르며, 때로는 기계적 유지가 생명이라기보다 고통의 연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환자와 가족의 마음속에는 이렇게 묻습니다.
“이 치료가 정말 내 삶을 위한가요? 아니면 단지 누군가의 두려움을 위한 것인가요?”
이 글에서는 기계적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적 절차, 윤리적 기준, 의료적 판단, 그리고 감정적인 준비까지, 다층적으로 살펴보며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지키는 방법을 제시해 드립니다.
기계적 연명치료의 정의와 역할: ‘살아있는 것’ vs ‘존재하는 것’
의학적으로 기계적 연명치료는 환자가 자발적인 심장 박동이나 호흡이 불가능해졌을 때, 이를 대신해 생명을 유지하도록 돕는 의료 행위입니다. 그 대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인공호흡기(ventilator): 호흡이 완전히 멈출 때 환자의 호흡을 대신해 숨을 유지
- 인공심폐기(CPB/ECMO): 심장이나 폐 기능이 심각히 저하된 환자에게 단기적인 순환 및 산소 공급을 지원
- 혈액투석(HD): 신장 기능이 멈춰 노폐물 제거와 수분·전해질 균형을 유지
- 심폐소생술(CPR): 심정지 상태에서 인위적인 순환을 유지하는 응급 조치
이 행위들은 단기적으로 매우 효과적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환자의 자율적 기능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기계적 유지만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 상황은 환자에게만 고통이 아니라, 가족, 의료진, 그리고 사회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기계적 연명치료는 단지 생물학적 생존을 위한 장치이지, ‘의미 있는 삶’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이 지점에서 많은 이들이 “이제 연명 치료를 멈춰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연명의료결정법 도입 이후 달라진 현실: 자기결정권과 절차의 명확화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은 기계적 연명치료 중단에 법적 근거를 명확히 제시합니다.
핵심 내용:
-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장: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사전에 문서로 남길 수 있음(사전연명의료의향서)
- 임종기 판단 기준 마련: ‘회복 가능성이 없고, 임종 과정에 있음을 의료진 2인이 판단’해야 장치 중단 가능
- 가족 의견도 반영 가능: 환자가 의사 표현이 불가능할 경우, 가족 2명 이상의 일치된 의사를 통해 중단할 수 있음
- 절차적 안정성 확보: 법에 명시된 등록 시스템과 윤리적 검토 과정을 통한 연명의료 중단 승인 체계 구축
즉, 더 이상 비공식적인 동의서나 의료진의 판단만으로 중단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 가족, 의료진이 함께 결정하는 구조가 마련된 것입니다.
실제 중단 절차와 사례: 어떻게, 누구의 판단으로 멈추는가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절차는 다음과 같은 단계로 이뤄집니다:
- 의학적 판단:
- 주치의와 다른 의사 한 명 이상이 ‘회복 불가능한 임종기’임을 확인
- 환자의 의사 확인:
- 본인이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있을 경우 우선 적용
- 없다면 일상생활 기록, 이전 의사 발언, 상담 내용 등을 통해 유추된 의사를 반영
- 가족 의견 수렴:
- 환자의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경우, 가족 2인의 일치된 의견을 포함
- 윤리위원회 또는 의료진 회의:
- 일부 병원은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통해 중립적인 검토 절차 진행
- 시스템 등록 및 시행:
- 보건복지부의 연명의료정보처리시스템에 중단 결정을 기록
- 임종기 치료 탭을 통해 공식적으로 등록하면, 의료진이 연명장치를 중단
사례로는 A씨(70대 여성)가 인공호흡기로 2주간 유지되던 중 임종기 판정을 받고, 본인이 남긴 의향서와 가족의 동의로 기계적 연명을 중단하고, 이후 ‘통증완화 중심의 완화 의료’를 통해 평안한 마지막을 맞이한 경우가 있습니다. 가족은 “그 결정은 우리 가족이 아닌, 어머니의 뜻이었다”고 말하며 돌봄 과정에 대한 평안을 표현했습니다.
감정적, 윤리적 과제: ‘누가 죽음의 시계를 멈추는가?’
연명치료 중단은 단지 의료 절차가 아닙니다. 다음과 같은 감정·윤리적 고민이 동반됩니다:
- 생명을 포기하는가에 대한 죄책감
- 환자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두려움
- 의료진·가족 사이의 의견 갈등
- 사회적 시선과 문화적 압박감
이러한 갈등 가운데, ‘결정의 주체가 누구인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환자가 미리 남긴 의향서는 그 결정이 환자 자신의 것이지, 가족이나 의료진의 선택이 아님을 명확히 합니다. 이는 결정의 심리적 부담을 줄여주는 동시에, 의료진에게도 법적·윤리적 안정감을 제공합니다.
환자 본인의 의향이 없고 의사 표현이 어려운 경우에는 가족이 판단의 주체가 되지만, 이때도 환자가 존중되었다는 기억이 남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는 고통 속에서 더 이상 참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그 뜻을 따랐습니다.”라는 말은 슬픔 속에서도 평온한 위로를 줄 수 있습니다.
연명중단 이후 완화 의료의 중요성: 단절이 아닌 전환
연명의료 중단이 곧 치료의 종결이 아니라는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히려 그것은 치료 방식의 전환이며, 이를 위해 완화 의료의 역할이 핵심입니다.
전환 후 집중되는 분야:
- 통증 완화 및 진정적 돌봄
- 심리적, 사회적, 영적 지원
- 가족 돌봄 및 애도 준비
-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따른 최종 의사 존중
이러한 완화 의료는 ‘죽음을 가두는 치료’와는 정반대입니다. 그것은 최후의 순간까지 환자가 의미 있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지켜주는 구조입니다.
결론: 연명치료 중단은 죄가 아닌 존엄입니다
“생명을 중단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낯선 결정입니다. 그러나 법과 절차는 명확하며, 그것은 환자의 존엄을 위한 해방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연명치료의 중단은 더이상 숨기거나 두려워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마지막에 대한 진정한 선택의 실천이며, 완화 의료를 통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깊이 고민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가족과 의료진이 사랑하는 사람의 최후 순간을 함께 설계할 용기가 있다면, 기계가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된 시간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은 결국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진정한 답을 건네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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