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화 의료 말기 치료 중 기계적 연명치료는 중단할 수 있나요?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공호흡기, 투석기, 심폐소생술 등 다양한 기계적 장비들은 사람의 생명을 ‘유지’시켜줄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환자와 가족에게 가해지는 정서적, 신체적, 경제적 고통은 상상 이상입니다.
특히 말기 환자에게 있어 이런 연명 치료가 단순히 생명을 이어주는 것이 아니라, 존엄성을 해치는 고통의 연장이 될 수 있다면, 그 치료를 계속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생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기계를 떼면 죽는 거잖아요. 그걸 우리가 결정해도 되는 걸까요?”
이 질문은 단순한 의료적 고민을 넘어서 윤리적, 심리적, 그리고 문화적인 갈등까지 포괄하는 복잡한 이슈입니다.
이 글에서는 기계적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법적으로, 의학적으로, 윤리적으로 가능한가?, 그 판단은 누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완화 의료의 관점에서 연명치료 중단이 갖는 의미에 대해 차분히 살펴보겠습니다.
완화 의료의 관점에서 본 연명치료의 한계와 부담
완화 의료는 말기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삶의 질을 보존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의미 없는 연명치료는 ‘치료’가 아니라 오히려 ‘고통의 연장’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미 의식이 없고 스스로 숨을 쉴 수 없는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계속 달아놓는 것이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 일일까요? 가족들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의학적 관성에 따라 치료를 이어간다면, 환자는 고통 속에 머무르게 됩니다.
완화 의료에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진과 가족이 함께 판단할 수 있도록 다학제 회의, 윤리위원회, 사전의료의향서 등을 통해 환자의 뜻을 중심으로 치료 방향을 조정합니다.
즉, 기계적 연명치료가 환자에게 이익보다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 치료를 중단하는 것도 환자의 권리이며, 이는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고통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기계적 연명치료 중단은 법적으로 가능한가?
많은 이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법적인 문제입니다. “내가 부모님의 기계 장비를 중단하자고 하면, 혹시 법적 처벌을 받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이 현실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2018년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정식 명칭: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은 이러한 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했습니다.
이 법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합니다:
-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라면 연명의료 중단을 본인 혹은 가족의 뜻에 따라 결정할 수 있음
- 이를 위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또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두면, 법적으로 효력을 가짐
- 가족이 대리 결정을 해야 할 경우에도, 모든 직계가족의 합의를 통해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
- 의료진은 전문의 2인의 판단과 가족 또는 환자의 문서적 의사를 근거로 중단 결정을 이행 가능
즉, 기계적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법적 위반이 아니라, 제도적 절차를 거친 합법적 선택임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다만, 여전히 많은 병원에서는 제도 시행 초기의 혼란과 의료진의 보수적인 태도 등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시행되지 않는 경우도 존재하므로, 병원 내 윤리위원회나 완화의료 전문팀의 조언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완화 의료에서 기계적 연명치료 중단의 실제 적용 사례
다음은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 완화의료 병동에서 있었던 실제 사례입니다.
김모(72세) 씨는 말기 폐암으로 여러 차례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병세가 악화되었고, 입원 중 급성 호흡부전이 발생해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환자는 이미 병실에서 가족에게 “이제 치료는 그만하고 편하게 있고 싶다”고 수차례 말한 상태였고, 병원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작성되어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의료진과 논의 끝에 인공호흡기 제거를 결정했고, 의료진은 진정제를 사용하여 환자가 불편함 없이 호흡기 제거 과정을 겪을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김씨는 30분 뒤 평온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고, 가족은 “이제 아버지가 고통 없이 가셨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기계적 연명치료 중단은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고,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인도적 선택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기계 중단 후에도 지속되는 완화 의료의 돌봄
기계적 연명치료를 중단한다고 해서 의료의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후에도 환자는 고통을 호소할 수 있고, 가족은 정서적으로 매우 큰 혼란과 슬픔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때 완화 의료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환자와 가족을 돕습니다:
- 호흡 곤란, 통증, 불안, 메스꺼움 등 증상을 약물이나 비약물적 방법으로 조절
- 가족 상담, 임종 전 정서적 지지, 장례 준비와 애도 상담 제공
- 종교적 돌봄, 음악·미술 치료 등 통합 돌봄 프로그램 제공
중요한 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을 ‘사랑을 마무리하는 시간’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환자가 남은 시간 동안 가족의 손을 잡고, 감정을 나누고, 눈을 맞추며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완화 의료의 핵심입니다.
연명치료 중단은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연명치료 중단 결정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고통스러운 의료 개입을 줄이고, 환자에게 마지막 시간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는 말 아래, 때로는 환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연명 장비에 의존하는 선택을 당연시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마지막이 진정한 인간다운 마무리인지 질문할 때입니다.
완화 의료는 환자가 남은 시간 동안 불필요한 기계에 묶여 있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조용히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인간적인 의료입니다.
결론: 연명치료 중단, 사랑의 또 다른 형태
사랑하기 때문에 살리고 싶고,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싶다는 마음은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더 이상 고통받게 하지 않겠다는 결심 또한 깊은 용기입니다.
기계적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결정은 단지 의료적 선택이 아니라, 환자의 뜻을 존중하고, 삶의 마지막까지 품위 있게 지켜주겠다는 다짐입니다.
완화 의료는 이 다짐이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위로가 되고, 남겨진 사람에게도 후회보다는 평안을 남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든든한 돌봄의 동반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