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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무리 - 완화 의료

완화 의료 말기 치료 중 의사 결정은 누가 하나요?

by 우주고래하루 2025. 7. 16.

말기 치료는 단순한 의료적 조치를 넘어,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깊은 감정적, 윤리적 선택을 요구합니다. 더 이상 회복이 어려운 상태에서 어떤 치료를 지속할 것인지, 어떤 조치를 중단할 것인지, 환자의 삶의 질과 남은 시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는 극히 개인적이고 중요한 결정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중대한 결정이 실제로는 환자 혼자만의 몫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가 의사 표현이 어려운 상태이거나, 가족 간의 의견 차이가 있거나, 환자 본인의 뜻이 사전에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다면, 의사 결정의 주체는 누구이며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이 글에서는 말기 치료 중 의사 결정을 내리는 주체, 그 절차와 기준, 실제 상황에서 벌어지는 갈등 사례와 해법까지 폭넓게 살펴봅니다.

완화 의료 말기 치료 중 의사결정 주체

자기결정권: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 때

의료 윤리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원칙 중 하나는 ‘자기결정권(autonomy)’입니다. 이는 환자 스스로 자신의 치료 방향과 삶의 끝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환자가 의식이 명료하고 판단 능력이 있는 상태라면, 말기 치료의 여부, 연명치료의 지속 여부, 진통제 투약 방식 등 모든 의료적 결정은 환자의 뜻을 최우선으로 따라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2018년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환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연명의료 중단을 사전 명시할 수 있습니다. 이 문서에는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생명연장을 위한 의료행위 중 어떤 것을 원하지 않는지를 선택할 수 있으며, 의료기관은 이를 법적으로 존중해야 합니다.

 

자기결정권은 단순히 ‘그만 치료하겠다’는 선택만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환자가 “남은 시간 동안 가족과 집에서 지내고 싶다”, “고통 없이 명료한 정신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등의 바람 역시 의료적 판단에 포함되어야 하며, 의료진은 이를 충실히 반영할 책임이 있습니다.

 

대리결정: 환자가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

 

문제는 환자가 의식이 없거나 의사 표현이 어려운 상태에서 발생합니다. 뇌졸중, 혼수 상태, 중증 치매 등으로 인해 환자가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히지 못할 때, 의료진은 가족이나 법적 대리인의 판단을 통해 치료 방향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때 기준이 되는 것이 ‘대리결정권’입니다. 한국의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환자가 사전에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를 문서로 남기지 않은 경우에는 직계 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의견을 바탕으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 자녀, 부모 등 직계가족이 모두 같은 뜻을 밝혀야만 연명의료 중단이나 완화의료 전환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가족 간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가족은 “어머니는 삶을 끝까지 붙잡고 싶어 하셨다”고 하고, 또 다른 가족은 “고통 없이 가는 것이 어머니의 뜻이었다”고 주장하며 갈등이 생깁니다. 이럴 때 의료진은 법적 기준에 따라 의사결정을 유보하거나, 윤리위원회의 중재를 요청하게 됩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환자가 의식을 잃기 전, 충분한 대화를 통해 자신의 뜻을 가족과 공유해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려운 경우, 의료기관의 사회복지사나 완화의료 상담사, 정신건강 전문가와 함께 가족 간의 의사소통을 중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의사 결정의 충돌: 가족 간 갈등과 의료진의 역할

 

말기 치료에서는 단순히 치료 여부만을 놓고 다투는 것이 아닙니다. 환자의 신념, 가족의 후회, 종교적 가치, 경제적 부담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의사 결정 과정이 혼란스러워지기 쉽습니다. 특히 형제자매가 많은 가정에서는 누가 중심이 되어 결정을 내릴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장남은 “치료를 중단하고 집으로 모셔가자”고 주장하지만, 막내딸은 “아직 치료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할 수 있습니다. 의료진이 어느 쪽 편을 들어야 할지도 애매한 상황에서, 환자의 고통은 길어지고 결정은 미뤄지게 됩니다.

 

이러한 갈등을 줄이기 위해 완화 의료기관에서는 다학제 팀 회의를 열어 환자의 상태, 치료 효과, 환자 의사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윤리적 관점에서 조언을 제공합니다. 또한 가족 간 의사소통을 돕기 위해 ‘가족 회의’를 정기적으로 열어 의료진, 사회복지사, 가족 구성원이 함께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조율합니다.

 

의료진은 이 과정에서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며, 가장 중요한 기준인 “환자의 삶의 질 향상과 고통 완화”라는 원칙을 분명히 제시해야 합니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환자의 관점’을 잃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변화: 더 나은 결정을 위한 준비

 

현재 한국에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외에도 ‘의료결정지원제도’가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이 제도를 통해 말기 환자의 치료 계획을 보다 체계적으로 수립할 수 있습니다. 또한 노인요양시설이나 완화의료병동 등에서는 입원 초기부터 ‘치료목표 설정 면담’을 진행하여, 환자와 가족이 미리 치료의 방향을 논의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국민은 말기 치료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사전의향서 작성률도 낮습니다. 대화를 꺼리는 문화, 죽음을 금기시하는 정서,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거리감 등이 큰 장벽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병원뿐 아니라 지역사회, 종교기관, 언론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생애 말기 치료와 의사 결정에 대한 교육과 캠페인이 이뤄져야 합니다. 가족들은 “언제,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죽음에 대해 대화할지를 사전에 고민하고, 실제 상황이 왔을 때 당황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마무리: 환자의 마지막 선택을 지켜주는 일

말기 치료에서 의사 결정은 단지 기술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환자의 삶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권리’를 존중하는 일이자, 가족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의 과정입니다. 환자가 말할 수 있다면 그 말을 존중하고, 말하지 못한다면 평소의 삶과 가치를 기억하며 선택해야 합니다.

 

의료진은 중립적이면서도 따뜻한 조언자가 되어야 하며, 가족은 감정과 신념 속에서도 환자의 입장을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누구나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환자의 ‘마지막 선택’을 지켜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고, 진정한 돌봄의 완성입니다.